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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 역사 이야기

SOHO아이디어 2019. 6. 10. 18:11

6월 민주항쟁 역사 이야기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고문 끝에 죽음을 맞이한 한 청년

그의 이름은 박종철 군

 

정부의 궤변

"책상을 한대 쳤을 뿐인데

억 하고 죽었다."

 

폭행과 물고문의 흔적들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도

그때 당시 군사정권의

횡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987년 4월 13일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시하며 전두환 정권의

호헌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시민들은 분노하였고

뜨거운 분노는 민주화의 물결로

퍼져나갔습니다.

1987년 5월 18일

천주교 정의 구현전 국세 제단

김승훈 신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사건은

축소. 은폐 조작이며

정권은 국민을 속였다."

 

1987년 5월 27일

여당 종교계

재야단체 이천 여명이 참여한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출범되었습니다.

전국으로 퍼지는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저항

독재의 끝을 향한 그 길에

민주화의 꽃이 피었으며

1987년 6월 9일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한 청년

그의 이름은 이한열 열사

1987년 6월 10일

민정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열리던 순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국민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전국 20개

도시에 시민 30만 명이 참여한

6월 10일 민주항쟁의 시작

6.10 민주항쟁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6.10 민주항쟁이 시작됨과

동시에

5일간의 명동성당 농성 투쟁

수많은 학생들도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도

6월 18일 전국적으로 계속되는

100만 명 이상이 넘는 시민들의 참여

6월 26일

국민평화 대행진과

전국 30개 도시에서

이백만 명 이상의 외침들

 

"독재타도"

"호헌철폐"

 

이러한 이유로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의 " 직선제 개헌

특별선언" 낭독되었습니다.

 

마침내 독재의 어둠을 몰아낸

국민들의 뜨거운 민주화 항쟁과

환희의 순간들

온 국민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1987년 6월

마침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이 되었습니다.

 

7월 9일 100만 명의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모여들었고

민주화의 열망과 승리를 위해

버텨온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였습니다.

 

드디어 대한민국에 민주화의

꽃이 피어나고

2007년 5월 2일

노무현 전 대통령 정권에서야

6.10일은 민주항쟁의 역사적인

날로 기억되며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6.10 민주 항쟁의 날

어느 달보다 뜨거웠을 6월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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