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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O아이디어/생활정보 이야기
전봉준 동학농민운동 -한국근현대사 본문
" 동학은
수심(守心)하여 충효(忠孝)로써
근본을 삼고 보국안민(輔國安民)
하려는
것이었으며 수심 경천(守心敬天)
의 도(道)였다.
때문에
나는 동학을 극히 좋아했다."
-전봉준 1895년
일본 영사관의 2차 재판 중-
전봉준-녹두장군과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한국 근현대사에
알아보겠습니다.
「동학농민운동 원인」
1880년대에 이르러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만민 평등사상의 동학은
부패한 관리의 수탈과
외세의 경제 침탈에
핍박받는 농민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얻게 됩니다.
교세가 확장하자
동학 교도들은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을 중지해달라는
시위를 벌이면서 점차 보국안민
척왜 양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봉기를 도모하게 됩니다.
-교조 최제우는
동학농민운동의
교주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동학농민운동 아니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고부 농민 봉기(1894년 1월)-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 되었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백성이 한 사람이나 어디
남아 있겠나." -사발통문-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폭정을
견디다 못한 농민 수백 명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앞세워
관아를 점령하고 아전을
처벌하기에 이릅니다.
신임군수의 온건한 무마책에
농민군은 스스로 해산하였지만
서울에서 안핵사로 내려온 이용태는
민란 관련자를 혹독하게 탄압하였고
이를 계기로 동학농민운동
농민 봉기는 더욱 크게 번지게 됩니다.
제1차 농민봉기(1894년 3월)
보국안민의 방책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관직과 재물만을 도둑질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라 하겠는가.
이제 의로운 깃발을 들어 굳은
맹세를 하노라.
-동학농민운동군의 <창의문>-
탄압에 맞서 전봉준은
무장에서 농민군을 재정비한 뒤
전국 각 지역에 통문을 보내
김개남 손화중과 함께 봉기를
일으키게 됩니다.
황토현 황룡촌 전투에서
정부군을 크게 격파하고
기세를 몰아 그해 4월
전주성에 입성하게 됩니다.
전주성 함락에 놀란 조정에서는
청에 구원병을 요청하지만
청/일 간 체결했던
텐진 조약으로
일본 또한 조선에 군대를
파병시키게 됩니다.
2천여 명의 청나라 군과
8천여 명의 일본군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맞이한 정부에서는
양국에 철병을 요구하지만
농민군은
정부의 폐정 개혁안 수락을
조건으로 휴전을 제의하였고
그해 5월 전주 화약을 맺은 뒤
해산하게 됩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군중 수천 명을 끼고
우도에 호령하였으며
김개남은 군중 수만 명을
거느리고 좌도를 통송하였다.
심지어 고을 원을 추방시키니
모두 동학당에 들어
성명을 보존하였다.」
-갑오 약력-
동학운동 농민군은
집강소를 /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여
폐정 개혁 안을 실시하였으나
제2차 농민봉기(1894년 9월)
가 일어납니다.
일본군은 철병을 거부하고
서울로 진군하여
무력으로 경복궁을 점령한 뒤
군국기무처를 설치하여
조선 정계를 장학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특히 폐정 개혁보다
항일 투쟁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녹두장군 전봉준은
전라도와 충청도 교단을 연합하여
다시 대규모 농민 봉기를 일으켜
한양으로 돌진하지만
11월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관군 민보군까지
합세한 연합군에 공격을 받고
대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전봉준은 모두 진압되게 됩니다.
"왜 난을 일으켰느냐?"
"일어난 것은 난이 아니라
백성의 원한이다.
민병을 일으킨 것은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함이요
백성의 삶에서 폭력을 제거코자
했을 따름이다."
-전봉준 공초-
농민들이 개혁을 이루려 했던
동학농민운동은 이후
조선의 농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 근대 개혁의 길을 터주었지만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 운동이 일어난 해는
조선을 향한 일본의 야욕이
마침내 실현에 이르던 시기였으며
일본군의 야욕에 조선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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